지적장애분과
박선옥
항상 웃음꽃이 끊이지 않고, 긍정의 힘을 주위의 부모들에게 전하며 양육에 지친 이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전하며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어버이가 있습니다. 장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하던 70년대에 태어난 아들의 치료와 교육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느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그 눈물과 노고가 40여년의 세월에 녹아들어 이제는 웃으며 반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정일보다 두 달 먼저 태어난 아들이 다운증후군이라며 포기하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을 때 그 순간에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고 삶의 희망을 잃은 듯 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척들은 엄마 탓이라며 모진 소리를 내뱉었고, 다섯 살이 되도록 아이가 걸음마를 하지 못하고, 집안의 모든 물건을 창문 밖으로 던져 버리는 등 행동이 점점 격해질 때마다 그 상황을 홀로 감내해야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서 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엄마뿐이라는 생각으로 세상의 벽에 맞닥뜨릴 때마다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를 견디며 하루하루 조금씩 견디고 버텨냈습니다.
이 어버이는 황무지 같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장애아부모들과 함께 수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교육, 치료 등에 대한 정보가 너무도 부족했기에, 이를 계기삼아 1985년에 한국구화학교 학부모회장과 한국장애인부모회 창립총회에 참여하게 되면서, 장애인복지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습니다. 한국장애인부모회의 초대 故 엄요섭 회장님부터 현재 노익상 회장님까지 여러 회장님을 모시고 함께 발벗고 뛰었습니다.
1996년에는 한국장애인부모회 서울특별시지회를 설립하여 초대 회장을 지냈으며, 주간보호센터 2곳, 공동생활가정 2곳을 개소하여 한국장애인부모회만의 특성을 살려서 중증장애인까지 아우르는 기관으로 운영하며 장애인가족이 더욱 더 믿고 맡길 수 있게 구축하였습니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다시 서울특별시지회장을 역임하며 장애인부모의 마음을 담아 장애인복지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전문성을 강화하였고, 2007년도에는 서울특별시와 보건복지부가 지원하는 ‘장애아가족양육지원사업’시행기관으로 선정되어 만 18세 미만의 장애아가정에 돌봄서비스와 휴식지원프로그램을 제공하였으며, 이 사업은 2015년도 현재까지 서울특별시지회의 대표사업으로 원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2011년도에는 ‘우수 사업시행기관’으로 선정되어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여하는 영광을 안기도 하였습니다.
중증의 장애자녀를 키우는 어미의 마음으로 장애인복지사업을 구상하고, 자신의 잇속만 챙기기 급급하여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는 팍팍한 현대사회에서 이웃과 사회를 두루 살피며 물심양면으로 노력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행복한 복지사회 건설을 위해 주간보호센터에서 장애인이용자들과 신나는 하루를 보내고 있을 이 어버이에게 ‘올해의 어버이상’을 드립니다.
장애인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보다 장애인으로서 지역사회 안에서 갖게 될 편견 속에서 소외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돈이 되는 직업도 포기한 채 한국장애인부모회에서 사회복지정책과 부모회 운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어버이입니다.
이 어버이의 아들은 출생한지 1주일 만에 패혈증 진단을 받고 소아과 중환자실에서 4개월가량 입원을 하는 동안 고열로 인한 열경기 등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고비를 수차례 넘기기를 반복하였습니다. 그 반복되는 시간동안 아들은 뇌세포가 20% 넘게 손상이 되었다는 진단결과를 듣게 되었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좌절과 절망감을 느끼게 될 쯤 주위에서는 포기하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힘겹게 살아있는 아이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고, 특수교육을 통해 장애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극진히 간호하며 아들의 치료에 힘썼습니다.
자녀가 꾸준한 재활치료를 통해 4살이 되어 첫 걸음마를 할 무렵, 아이를 위해 특수어린이집으로 들어가 자모회운영을 통한 봉사를 결심하였고, 자모회장직을 맡아서 2년 동안 어린이집 활성화를 위해 주도하였습니다. 이후 특수학교인 대구보명학교에 진학하게 된 자녀를 위해 2003년~2004년 동안 학부모회장을 맡아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리모델링을 추진하였으며, 학교 내에서 장애아동이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운동장 설치를 위해 1개월 넘게 교육청과 사학재단을 향해 집회를 열어 바닥 전체가 우레탄으로 되어있는 안전한 운동장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특수학교 보조교사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배치인력 확충을 교육청에 강력하게 요구하는 등의 많은 활동내역을 인정받아 대구광역시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장애아양육우수사례발표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2003년 대구광역시장애인부모회 정신지체 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보험회사로부터 법인대리점 대표로 일해 달라는 스카우트 제의도 들어왔지만 열악한 복지정책과 그 당시의 어려웠던 부모회 운영을 위해 제안을 거절한 채 여지껏 한국장애인부모회와 장애인인식개선 강사로서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어려운 가정환경이었지만 장애자녀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달려오다보니 20대구광역시장 표창장,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장을 받았으며, 장애인가족지원센터 설치 및 운영을 위한 기자회견과 모범적인 집회활동을 통해 한국장애인부모회 대구광역시지회가 우수한 운영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발달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하여 발달장애인의 지원방향을 모색하는 데 힘을 쏟았으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서 2009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소에서 모니터링 활동가로서 장애인 인권옹호를 위해 앞장서기도 하였습니다. 2010년부터는 대구광역시 남부지역사회복지협의체 실무위원으로 지역사회복지증진을 위해 활동하고 있고, 2014년부터 현재까지 대구지방법원 장애인사법지원단으로서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및 재판을 받기 전부터 장애인이 편안하고 차별받지 않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 어버이는 본인의 실리를 챙기기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적인 봉사와 적극적인 참여로 부모회 및 지역사회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며 장애인복지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기에 이 어버이에게 ‘올해의 어버이상’을 드립니다.